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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에서 벗어나 이슬람 극단주의 바라보기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만평을 수업 자료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체첸 무슬림에 살해당한 교사 사무엘 파티(Samuel Paty) 추모 집회출처: FRANCE 24 10월 프랑스에서 전해진 테러 소식은 세계를 다시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수업에서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에 실린 예언자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교사가 무슬림의 손에 끔찍한 죽음을 당했고, 이어 니스의 성당에서도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Allah Akbar, الله أكبر)", '신은 위대하시다'고 외치는 무슬림의 손에 또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리옹에서도 그리스 정교회 사제를 노린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한편 세계 각지의 무슬림권에서는 교사 테러 사건을 '이슬람 테러리즘.. 2020. 10. 30.
『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몽골 제국 이후의 세계 1206년, 보르지긴(Borjigin) 부족의 지도자인 테무진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칭기스칸'의 칭호를 받은 이후, 몽골인들은 초원을 넘어 온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칭기스칸과 그의 후계자들의 이끄는 몽골인들은 유라시아를 휩쓸며 금(金), 송(宋), 대리(大理), 서하, 카라 키타이, 압바스 칼리프조, 룸셀주크, 블라미디르-수즈달 공국, 키예프 공국, 알라무트의 이스마일파 이맘국 등 수많은 나라들을 무너뜨렸으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과 러시아 초원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이 몽골 제국의 통치 아래 놓였다. 칭기스칸 이전만 하더라도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몽골인들은 알려지지 않은, 그저 흔하디 흔한 초원의 유목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칭기스칸이 등장한 이후, 몽골은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 2020. 7. 23.
『여행기』에 나타나는 이븐 바투타의 쉬아파 인식 이븐 바투타의 여정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중동과 중앙아시아, 인도와 동남아를 거쳐 중국까지출처: https://www.history.com/news/why-arab-scholar-ibn-battuta-is-the-greatest-explorer-of-all-time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1325년 2월,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태어난 21살의 젊은 청년 이븐 바투타는 메카 성지순례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가 성지순례의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는 가족과 친구와 주위 사람, 심지어 그 자신도 이 여행이 30년에 걸쳐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모험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이븐 바투타의 여로는 이집트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 시리아, 이라크, 페르시아, 아나.. 2020. 7. 7.
"너의 이름은": 아랍인들의 이름이 지닌 사회적 함의 아니 이거 말고...... 너의 이름은이름은 우리가 가진 두 번째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이름을 묻고, 우리 자신을 소개할 때 우리의 이름을 밝힌다. 이처럼 이름은 정체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 즉 '나는 누구인가'를 인식하고 밝히는 최초의 출발점이다. 더 나아가 이름은 한 개인의 고유한 개별 정체성과 관련된 상징인 동시에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이전에 이미 결정된 성씨와 달리, 많은 경우 개인의 이름은 부모나 가족의 희망, 가치관 그리고 정체성 인식을 반영한다. 좋은 뜻을 가진 글자나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항렬에 따르거나, 작명소에 맡기거나, 기독교식으로 붙이거나, 집안 어른이 결정.. 2020. 6. 21.
신의 징벌, 지니의 화살, 산의 진동: 중세 무슬림들의 천재지변 인식 중세 이슬람권 문명이 과학과 의학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결국에는 동시대의 다른 전근대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농업에 토대를 둔 사회였다. 마셜 호지슨(Marshall Hodgson)이 '농경 도시 사회(agrarianate citied society)'라고 부른 전근대 사회에서 군주, 사제, 귀족, 상인, 학자 등 지배 엘리트들이 이루어낸 문화적 성과와 발전은 농촌의 농민들이 수확한 잉여 생산물을 수취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러나 동시에 호지슨은 전근대 사회의 농업 생산력은 환경적, 기술적 요인으로 인해 제한적이었으며 그 결과 고등 문화와 학문의 발전 수준 역시 일정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중세 이슬람권 문명의 학문적, 문화적 발전 역시 농업 생산력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 2020. 4. 15.
사회적 거리두기와 샤리아: 이슬람 종교계의 코로나19 대응 코로나19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중요한 방역 수단으로 대두되면서 집단 예배와 성지 순례와 같이 신실한 무슬림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종교적 의무의 실천이 불확실한 상황이 되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올바른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지 의문이 생겨났다. 이 시국에 전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성지 순례를 가야 할까? 이 시국이라고 무슬림의 의무인 성지 순례를 방기해도 괜찮은 것일까? 무슬림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여 매주 금요일마다 거행하는 집단 예배를 중단하거나 참가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이에 응답하여 울라마('ulama), 코란과 예언자가 남긴 모범인 순나(sunnah)에 토대를 둔 올바른 규범인 샤리아(shari'ah)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규정.. 2020. 4. 3.
쉬아파의 성지 콤은 어떻게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되었나 지난 2월 19일 최초의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코로나19가 이란 전역으로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 글을 쓰는 3월 18일 현재 이란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 수는 16,169명으로 중국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역시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란 태양력의 새해인 노우루즈(Nowruz)는 3월 20일 시작되지만, 제재와 경제난, 생활고 속에서 이미 지칠대로 지친 이란인들을 기다리는 것은 새해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아닌 전염병 뿐이다. 이란의 코로나19 위기는 여러 문제가 결합한 결과다. 경제제재 속 미국, 유럽, 한국과 일본과의 교역이 사실상 차단된 이란에게 중국은 거의 유일한 주요 교역 상대국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란과 중국을 오가는 과정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 2020. 3. 18.
"아라비아에는 두 종교가 있을 수 없다": 이슬람 이후 아라비아의 유대인들 "لَا يَجْتَمِعُ دِينَانِ فِي جَزِيرَةِ الْعَرَبِ" lā yajtami'u dīnāni fi jazīrat al-ʿArab "아랍인의 반도에는 두 종교가 함께할 수 없다." 말리크 이븐 아나스(Malik ibn Anas, 711-795), 『무왓따(Muwaṭṭa')』 2권 (Beirut: Dār al-Gharb al-Islāmī, 1997), 471쪽. "أَخْرِجُوا الْمُشْرِكِينَ مِنْ جَزِيرَةِ الْعَرَبِ" akhrijū al-mushrikīna min jazīrat al-'Arab "아랍인의 반도에서 다신론자(mushrikīn)를 추방하라." 무슬림 이븐 알핫자즈(Muslim ibn al-Hajjaj, 815-875), 『사히.. 2020. 2. 8.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 중세 무슬림 역사서술과 숫자 "위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해답은.......!""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했다."해답은.......!""그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을 멈췄다."해답은.......!!!""42입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숙하고 침착하게 깊은 생각이 말했다.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권, 248-249. 서울: 책세상, 2005.숫자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공간의 우주에서 가장, 아니 두 번째로 위대한, 백만분의 일 초 안에 별 하나의 원자 수를 몽땅 헤아릴 수 있으며 빅뱅 당시 원자들의 벡터를 계산해온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으로 '42'라는 답을 내놓았.. 2020. 1. 22.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의 이름은 대체 무엇일까 1. 이란의 한 팔이 꺾이다지난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노린 미군의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부대인 예루살렘 군의 사령관이 사망했다. 이란 국외의 군사, 첩보 및 게릴라 작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인 예루살렘 군은 중동 각지의 쉬아파 민병대와 무장조직, 친이란 정치세력을 지원하며 중동 내 이란의 대외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이번에 사망한 인물은 지난 20년간 예루살렘 군의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이란 정권과 최고지도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온 거물급 인사다. 특히 2003년 이라크의 정권 교체와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이란이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펼칠 수 있는 지역 정세가 조성됨에 따라 예루살렘 군의 활동 범위 역시 대폭 확대되었고 예루살렘 군 사령관의 행.. 2020.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