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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사/형성기

이슬람은 페트라에서 시작되었을까?

by katib 2021. 3. 21.

2011년 캐나다 작가 댄 깁슨(Dan Gibson)은 『코란의 지리학(Qur'ānic Geography)』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이슬람의 기원에 관한 아주 도발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바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 이슬람이 시작된 곳이 우리가 아는 대로 메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깁슨이 제시한 이슬람의 발상지는 어디일까?

 

바로 요르단의 페트라다. 

 

<여기요?>

 

깁슨이 제시한 주장의 기본 골자는 간단하다:

 

1). 코란과 무함마드의 생애에 관한 전승에서 나타나는 지형과 지리적 묘사가 일치하는 곳은 현재의 메카가 아닌 바로 페트라다.

 

2). 이슬람력 1-2세기, 즉 600년대와 700년대 건설된 모스크의 예배 방향(키블라)는 메카가 아닌 페트라를 향해 있다.

 

마이클 렉커(Michael Lecker)는 깁슨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슬람 최초의 성도(聖都)는 메카가 아닌 페트라였다. 코란의 전반부는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메디나로 쫓겨 이주하기 전에 페트라에서 계시되었다. 무함마드와 네 명의 정통 칼리프는 메카를 방문해 본 적도 없다. 흑석은 (2차 내전 시기) 이븐 주바이르의 추종자들이 우마이야 조의 손에서 안전한 메카로 옮기기 전까지 페트라의 카바에 있었다. 최초의 키블라는 '시리아'라고 불린 페트라를 향했으며, 이슬람력 64년 이전까지 모든 모스크는 페트라의 성지를 향해 건설되었다. 이슬람력 73-74년 시리아 군대가 페트라를 포위하고 투석기를 이용해 파괴했다. 이슬람력 94년에는 성도 페트라가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아라비아의 메카가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약 한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수용되었다." (Lecker, 465)

 

깁슨의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책의 상당 부분은 코란에 언급되는 아드('Ad)를 포함해 고대 아랍 왕국과 민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의 관심사인 이슬람의 기원과 페트라의 관련성에 대한 부분은 주로 후반부 약 150페이지에 집중되어 있다.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솔직히 깁슨의 책을 꼼꼼히 읽고 싶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아서 훑어보기만 했지만, 다행히 깁슨의 유튜브 채널에 2019년 7월 17일 업로드된 다큐멘터리 『신성한 도시(Sacred City)』- 무려 한글 자막까지! - 를 소개받았기에 이번 글에서는 주로 그 다큐멘터리 영상을 참조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 얼마나 깁슨의 핵심 주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깁슨의 책을 훑어보면서 발견한 내용 대부분이 영상에도 그대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깁슨의 주장을 잘 요약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 듯하다.

 

그렇다면 깁슨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 메카, 신비에 싸인 도시

깁슨이 첫번째로 제시하는 근거는 현재 메카의 지형과 코란 및 무함마드의 생애에 관한 전승에서 나타나는 지리적 묘사 사이의 차이다. 깁슨은 전승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경지를 갖춘 도시, 풀이 무성한 계곡 사이의 물과 나무가 무성한 도시로 묘사되는 메카가 실제 메카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메카는 연평균 강수량은 1년에 10cm 미만인 험준하고 척박한 산악 지형에 위치해 있으며, 식물이나 과일, 나무를 재배할 수도 대규모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경작지도 작물을 재배하기에도 어려운 땅이다. 깁슨은 또한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둘라가 농사일을 하다가 손에 흙(아랍어로 틴Tin, 즉 진흙)이 묻었다는 전승을 인용하며 메카 주위에는 경작할 만한 땅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페트라에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깁슨은 메카에 나무가 존재했다는 어떤 기록도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면 풍요롭고 푸르른 '메카'는 어디란 말인가? 

 

그런데 나무가 아예 없는 곳에 사람이 사는 것이 가능합니까?

댄 깁슨의 다큐멘터리 『신성한 도시』에서

 

이전에 소개했던 패트리샤 크론의 『메카 무역과 이슬람의 탄생(Meccan Trade and the Rise of Islam)』은 깁슨이 논지를 펼치기 위해 의존하는 중요한 출처 중 하나이다. 크론이 논증했듯이 메카는 무역 중심지가 아니었으며, 깁슨은 오히려 아라비아 북부의 카이바르(Khaybar), 타이마(Tayma) 그리고 페트라가 무역 중심지였다고 지적한다. 무역 중심지였다는 명성이 무색하게 이슬람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지도나 지리학 기록도 메카를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코란에서도 메카는 단 한 번 언급될 뿐이다(48장 24절). 깁슨은 "아라비아의 고대 지도 여러 장을 모아 꼼꼼하게 번역했으나 메카를 표시한 어떤 지도도 찾을 수 없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라비아 지도에서도 메카는 보이지 않으며, 서기 740년 이전에는 어떤 (비무슬림) 문헌도 메카를 언급하지 않는다"(Gibson 2011, 224). 하지만 깁슨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나 요르단 마다바에 있는 상당 부분 손실된 모자이크 지도를 제외하면 그가 번역하고 연구했다는 '고대 지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젊은 시절 무역상으로 활동했으며 아내 카디자(Khadija) 역시 상단을 운영하던 상인이었다. 하지만 메카에서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지도나 기록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면 무함마드는 대체 누구와 어떤 무역을 했던 것일까? (위의 글, 223-224). 메카가 많은 인구를 부양할 정도로 풍요롭고 무역의 중심지에 있었다면 왜 주위의 어떤 나라들도 메카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던 것일까? 이것이 바로 깁슨의 의문이다.

 

2. 키블라의 문제

깁슨의 강조하는 두번째 논점은 바로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 즉 초기 무슬림들이 예배를 드리던 방향이다. 깁슨은 7-8세기 각지에 건설된 수십 개의 모스크의 키블라가 메카도 예루살렘도 아닌 페트라를 향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모스크에 깁슨은 무려 중국에 건설된 모스크까지 포함한다. 깁슨은 이 모스크가 627년, 그러니까 히즈라 이후 단 5년이 지났을 뿐이며 아직 무슬림 공동체가 메카를 점령하지 못하고 메디나에 있던 그 시기에 무슬림들이 중국 광저우까지 가서 모스크를 건설했으며 '중국 문헌'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깁슨이 말하는 중국 기록은 예언자 시대로부터 약 600년이 지난 1206년의 문헌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다(위의 글, 253).

 

『코란의 지리학』이 출판되고 6년이 지난 2017년 그는 기존 연구에 더해 수십 개의 모스크를 조사해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가 페트라를 향해 있었으며, 8세기 중반 이후에 키블라가 메카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초기 이슬람의 키블라(Early Islamic Qiblas)』라는 책을 출판한다. 아래는 그가 조사한 모스크들의 키블라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표다(Gibson 2017, 6-7). 

 

깁슨이 조사한 7-8세기 모스크들의 키블라 방향 - 8세기 후반부터 키블라 방향이 메카로 바뀌기 시작한다.

 

코란 2장 144절은 무슬림에게 앞으로는 과거에 예배를 드리던 방향이 아닌 '성스러운 모스크(al-masjid al-haram)'을 향해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깁슨은 현존하는 초기 코란 사본 중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 사본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만약 키블라가 이슬람력 70년까지 바뀌지 않았다면, 초기 코란 사본에 이 구절이 없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Gibson 2011, 301)고 주장하며 깁슨은 이 구절이 키블라가 메카로 고정된 뒤에 가필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3. 페트라의 쿠라이쉬 부족

깁슨은 오늘날에도 요르단 남부 마안(Ma'an), 페트라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많은 쿠라이쉬 부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322), 압바스 칼리프조의 1대와 2대 칼리프인 아불 압바스 알사파흐(Abu al-Abbas al-Saffah)와 아부 자으파르(Abu Ja'far al-Mansur)가 페트라 인근 후메이마(Humeima)에 살고 있었으며, 우마이야조를 무너뜨린 이라크 무슬림들의 요청을 받아 이라크로 갔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깁슨은 왜 예언자의 가문이 메카와 메디나가 아닌 오늘날 요르단에, 정확히는 페트라 인근에 있었는지 묻는다(위의 책, 322-323). 

 

이 부분에서 내가 든 생각은, 쿠라이쉬 부족의 후손이 요르단에만 사는 것은 아닐진대 이런 말을 정말 진지하게 근거로 생각하고 있는지였다. 이에 더해 한가지 딴지를 걸자면, 무함마드 가문의 다른 일원인 하산과 후세인, 즉 무함마드의 외손자들은 같은 시기에 메카와 메디나에 있었다.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쉬아파의 3대 이맘인 후세인은 메디나에서 이라크 쿠파로 가던 길에 살해당했다. 사실과 반대되는 내용을 말하는 것도 거짓이지만, 사실을 일부만 말하는 것 역시 거짓말이 아닐까? 

 

이 외에도 이슬람의 최초 성지가 메카가 아닌 페트라였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깁슨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지만, 다 살펴보다가는 책 한권을 그대로 옮겨야 할 판이니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는 깁슨의 주장에 대한 학계의 반응을 살펴볼 차례다.

 

4. 깁슨의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릭 오크스(Rick Oaks)는 깁슨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깁슨의 목적이 이슬람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풍부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 오크스는 깁슨의 주장이 학계의 진지한 평가와 분석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Oaks, 426). 

 

그러나 학계 전반에서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니엘 워(Daniel C. Waugh)는 깁슨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바테아 문명과 페트라에 흠뻑 빠져 있었으며, 만약 오늘날에 '나바테아 민족주의자'가 있다면 바로 깁슨이라고 말한다. 소련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역사를 전공한 워는 이슬람권 역사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무함마드의 생애에 관한 무슬림들의 전승에서 페트라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페트라가 정말 이슬람의 성지이자 무함마드의 출생지였다면, 아무리 후대 무슬림이 기존 기록을 조작하고 변개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페트라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을 수 있는가? 깁슨은 키블라가 메카로 바뀐 이후에도 샴(Sham), 즉 시리아 지역을 향해 예배를 드리던 무슬림이 있었다는 전승을 인용하며 페트라가 시리아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이 전승에서 말하는 샴은 곧 페트라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다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 그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깁슨은 또한 키블라의 변화를 언급하는 2장 143절이 어떠한 초기 코란 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음을 지적하며 후대의 변개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워가 지적하듯이 그리고 깁슨이 그의 책 부록 C에 수록한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애시당초 현존하는 코란의 초기 사본 중 코란 본문 전체가 실린 완전한 사본은 없다(Waugh, 201). 가령 대표적인 코란의 초기 사본인 영국 버밍험 대학교에서 발견된 사본에는 코란 1장이 없으며, 예멘의 사나 사본에는 코란 1장 7절만 실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코란 1장이 후대에 가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Gibson 2011, 435) 초기 사본에 2장 143절이 없는 이유는 깁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후대 무슬림들이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현존하는 초기 사본이 코란 본문 전체를 담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설명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워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깁슨의 가설이 맞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워는 현대 무슬림 신앙에서 확고히 자리매김한 메카의 중요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이슬람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은 깁슨의 가설을 그리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Waugh, 201)

 

초기 무슬림 역사와 무슬림 전승의 전문가인 마이클 렉커의 평가는 더욱 신랄하다. 먼저 렉커는 깁슨이 인용한 자료가 신문 기사, 아랍어 TV 프로그램, 무슬림과의 인터뷰, '쿠라이쉬 부족원의 이름'이 기록된 마안의 현지 진료소 기록 등등 이슬람 초기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자료들을 인용했음을 비판한다. 이어 렉커는 깁슨이 저지른 사실 관계 오류를 지적하며 본격적으로 신랄한 비판을 시작한다. 깁슨은 이슬람력 6년 무슬림들이 공격한 리흐얀 부족(Banu Lihyan)이 아라비아 서부에서 페트라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지역에 살던 리흐얀인(Lihyanites)이라고 주장하지만, 렉커에 따르면 리흐얀 부족은 메카 인근에 살던 후다일(Hudhayl) 부족에 속한 부족일 뿐이다(Lecker, 466). 

 

깁슨은 무함마드가 메카로 들어갈 때에면 '고지 싸니야(High Thaniyah)'로 들어갔으며, 떠날 때에는 '저지 싸니야(Low Thaniyah)'를 거쳤다는 전승에서 언급되는 '싸니야'를 '바위 균열(a crack in the rock)' 또는 '좁은 산길(narrow mountain path)'로 해석하며 페트라에 이러한 지형이 있다고 주장한다(Gibson 2011, 283). 그러나 렉커는 싸니야가 '좁은 산길'이라는 의미이긴 해도 '바위 균열'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메카에도 예언자가 드나들기 위해 지나갔던 두 싸니야를 포함해 싸니야라고 불리는 좁은 산길이 40곳은 넘게 있다(Lecker, 466). 싸니야의 존재 자체만으로는 페트라가 무함마드가 살던 곳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다우스(Daws) 부족의 투파일 이븐 아므르라는 사람이 여행 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메카의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했으며, 아내는 둘 샤라(Dhu al-Shara, 즉 나바테아인의 신 두샤라Dushara) 여신의 사원에서 몸을 정화한 뒤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하디쓰를 인용하며 깁슨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메카가 아닌 전통적으로 두샤라 신앙의 중심지인 페트라라고 주장한다(Gibson 2011, 303). 그러나 렉커는 다시 한 번 사실관계의 오류를 지적한다. 다우스 부족이 살던 곳은 메카가 아닌 메카에서 남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와디 싸루크(Wadi Tharuq)였다(Lecker, 466). 또한 두샤라 신앙이 오직 페트라 지역에만 국한되었다고 보아야 할 이유가, 두샤라 여신이 아라비아로도 전파되어 둘 샤라로 알려졌을 가능성을 배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렉커는 키블라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까다로운 문제이며 치밀한 연구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페트라를 향한 키블라는 동시에 예루살렘과 같은 방향을 향해 있음을 지적한다. 렉커는 또한 깁슨의 연구가 추종자를 끌어 모을 수는 있어도, 초기 이슬람에 관한 연구는 깁슨이 제시한 것과 같은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주장보다는 방대한 1차 사료를 철저히 분석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위의 글, 467).

 

마크 앤더슨(Mark Anderson)은 워와 같은 문제점을 제기한다. 코란은 페트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코란의 독자들과 페트라의 관계에 관한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다. 18장 9절에 언급되는 '알라킴(Al-Raqim)'이 페트라라는 가설이 있지만(Shaddel 2017), 알라킴이 지명이 아닌, 동방 교회의 '동굴 속의 사람들' 이야기에 나타나는 '명문' 또는 '명판'이라는 설명도 있다(Griffith, 125). 무엇이 되었던 앤더슨이 말하듯이 18장 9절의 '알라킴'은 코란의 계시를 듣는 사람들과 관련된 무언가가 아닌 과거 역사의 이야기의 맥락 내에 있다. 설령 '알라킴'이 페트라라도, 코란에서는 지금 코란이 계시되는 장소가 아닌 지나간 과거의 장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깁슨은 전승에서 묘사되는 모습과 달리 메카가 척박하고 황량한 땅이라고 하지만, 앤더슨에 따르면 코란에서 언급하는 농경과 관련된 서술이 메카에서 약 87km 떨어진 농업 지역인 타이프(Ta'if)에 관한 내용이다. 코란에는 올리브와 같이 히자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물이나 초목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랍인들이 꼭 팔레스타인에 살아야만 그런 식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더해 앤더슨은 메카를 초목이 무성하고 푸르른 땅으로 묘사하는 하디쓰의 서술과 메카를 "모든 도시들의 어머니"로 묘사하는 코란의 언급이 메카의 신성함과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법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한편 깁슨은 여러 차례 이슬람 이전 메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앤더슨이 강조하듯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메카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애시당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트라에만 물과 들판과 나무가 있나요?

『신성한 도시』에서

 

깁슨이 이슬람의 기원이라고 설명한 페트라는 비잔틴 제국의 땅이었고, 그리스도의 본성을 두고 치열하게 싸운 주교들의 땅에서 여전히 다신교 신앙이 버젓이 남아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깁슨의 주장에 따르면 페트라에서 계시된 코란은 다신교가 마치 현재 사실인 것처럼 언급하며 다신교도들에게 우상숭배를 멈출 것을 명령하고 있다고 앤더슨은 지적한다. 위에서 보았듯이 깁슨은 마치 두샤라 신전이 7세기까지 정화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로 남아 있었다고 말하는데,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거나 적어도 비잔틴과 기독교도의 영향력이 무척이나 강했을 페트라에서 다신교 신앙이 그렇게 남아 있었을 수 있을까?

 

한편 깁슨이 인용한 메카가 '아라비아 페트라에아 파란(Arabia Petraea Paran)'에 있었다는 9세기 아르메니아 기독교도 저자인 토브마 아르트스루니(Tovma Artsruni)의 기록에 대해 앤더슨은 '아라비아 페트라에아'는 깁슨이 말하는 페트라가 아닌 시나이 반도까지 포함하는 비잔틴 제국의 한 주(州)라는 점을 환기한다. 아르트스루니가 메카를 '아라비아 페트라에아 파란'로 비정한 이유는 무슬림들이 메카가 하갈과 이스마엘이 방황한 땅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고, 그리고 창세기 21장 22절에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떠난 장소를 '파란'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즉 아르트스루니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방황하던 땅에 메카가 세워졌다는 무슬림 전승과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라비아 페트라에아의 한 지역인 파란에 있었다는 기독교도 전승을 합쳐서 '메카가 아라비아 페트라에아에 있었다'고 전한 것일 뿐, 메카가 과거에는 깁슨이 말하는 페트라라는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앤더슨의 주장이다. 이슬람 이후 약 300년 뒤에 살던 기독교도, 그것도 페트라든 메카든 어디든 직접 보지 않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아르메니아 기독교도의 주장을 근거로 페트라가 메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5. 키블라 문제

렉커가 지적하듯이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 첨예한 논쟁을 일으키는 문제로 남아 있다. 실제로 많은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는 메카가 아닌 다른 방향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중세 이슬람권의 천문학, 특히 모스크의 키블라 방향을 둘러싼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데이비드 킹(David A. King)이 깁슨을 비판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학자들이 한 두 페이지 분량의 서평으로 깁슨을 비판한 데 반해 킹은 여러 차례 키블라의 방향과 이슬람권의 방위와 지리 측정에 관한 글을 쓰며 깁슨의 주장을 공격했다.

 

초기 무슬림이 성지로 여긴 곳이 어디었으며 어느 쪽을 향해 예배를 드렸는지는 또 길고 복잡한 주제이기에 다음 기회를 기약하도록 하고, 여기에서는 초기 무슬림들이 오늘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모스크의 키블라를 정했다는 킹의 핵심 주장만을 소개한다. 킹에 따르면 뛰어난 천문학과 지리학 지식을 갖춘 중간기 무슬림과 달리 7-8세기 무슬림들은 카바의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초기 무슬림들은 카바가 천체의 움직임과 위치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고, 자신들이 머무르는 지역에서 보이는 태양과 천체의 위치가 카바 성원의 특정 지점에서 바라볼 때와 동일하다면 다른 지역에 있어도 카바 성원의 특정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따라 키블라를 정했다. 이처럼 키블라는 정교한 계산이 아닌 이와 같이 천체의 위치, 특히 태양의 위치를 고려하는 '민간 천문학'과 간단한 방위 계산에 따라 정해졌고, 따라서 초기에는 동일한 방향이 아닌 지역에 따라 결정되었다. 가령 이라크의 무슬림들은 겨울에 해가 지는 방향을, 이집트 무슬림들은 겨울에 해가 뜨는 방향을 키블라로 여겼다(King 1982, 309-310; King 2020, 10; King 2018-2019, 352). 달리 말하자면 -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 초기 무슬림들은 그들이 있는 지역에서 메카의 카바 성원을 향해서 키블라를 정한 것이 아니라, 메카 카바 성원에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 그들이 있는 지역에서 키블라를 결정했다.

 

킹이 보기에, GPS와 위성지도, 현대적 수학과 과학기술로 무장한 깁슨과 같은 학자들이 1000년 전 사람들이 지은 모스크 키블라가 메카와 얼마나 일치하고 각도가 얼마나 차이나는지 따지는 것은 실제 무슬림들이 키블라를 결정하고 측정하는 의도와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다. 초기 무슬림들에게 키블라는 엄밀한 수학적, 과학적, 지리적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닌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였으며 여기에 초보적인 천문학과 수학적 지식으로 결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King 2020, 8-9, 13). 이러한 이유로 킹은 깁슨 이전에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를 두고 초기 이슬람의 성지가 메카가 아니었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수정주의 학자들 - 존 완스브로(John Wansbrough), 패트리샤 크론(Patricia Crone), 마이클 쿡(Michael Cook) 그리고 이전에 소개한 팀 홀랜드(Tim Holland)까지 - 모두 큰 오판을 저지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위의 글, 8, 27).

깁슨은 초기 아랍인들의 방위 계산이 매우 정확했다고 본다

『신성한 도시』에서

 

킹의 맹렬한 - 어찌 보기에는 감정적인 - 비판에 대해 깁슨은 초기 무슬림들이 별을 보고 방향을 측정해 정확히 키블라를 정할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가 검토한 모스크들이 분명히 페트라를 향하고 있다고 반박한다(Gibson 2017). 한편 발터 슘(Walter R. Schumm) 또한 깁슨이 다룬 모스크 상당수의 방위각이 페트라 또는 메카와 큰 오차가 없다으며 이는 초기 무슬림들이 꽤나 정확하게 키블라를 정할 능력을 가졌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분석한다(Schumm, 5-6, 14). 이미 1997년에 로버트 호이랜드(Robert Hoyland)는 킹의 가설이 독창적이고 흥미롭지만, 중간기 무슬림들의 문헌에 의존하고 있기에 초기 무슬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Hoyland 573).

 

개인적인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키블라에 관한 킹과 깁슨의 논의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기에 이 정도로밖에 소개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키블라에 관한 깁슨이 제기한 여러 대담한 가설 중 적어도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 문제는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6.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깁슨의 논의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의를 쭉 정리해하면서 개인적으로 솔직히 느낀 점은, 키블라 문제를 제외하고서는 깁슨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깁슨은 키블라를 통해 무함마드가 활동하고 이슬람이 등장한 장소를 메카에서 페트라로 옮겨왔지만, 나머지를 옮겨오는 것은 깜빡했다.

 

한 예로 메디나에 관해서는 무슬림 전통 서사를 인용하고 넘어가면서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한 히즈라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다. 그렇다면 무함마드와 그 추종자들이 페트라에서 메디나까지 1,000km가 넘는 거리를 도피했다는 말인가? 무슬림 전승에 따르면 메디나로 이주하기 전에 무함마드는 메카(또는 페트라) 유력자들의 박해를 피해 추종자들을 에티오피아로 피난시켰다고 한다. 무함마드가 페트라에 있었다면 대체 왜 그 먼 에티오피아로 피난시켰나? 그냥 이웃의 비잔틴 제국으로 보냈으면 모두가 더 편하지 않았을까? 무함마드와 초기 무슬림들이 페트라에서 처음 등장해 중동을 정복하기 시작했다면, 비잔틴 제국은 도대체 왜 예루살렘에서 20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페트라에서 등장한 무슬림 군대에게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것일까? 왜 아랍 대정복을 목격하고 기록을 남긴 동시대 기독교도들은 바로 코앞에서 등장한 정복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일까?

 

깁슨은 8세기 이전까지는 메카를 언급한 기록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아랍 무슬림들이 페트라에서 등장했다는 동시대 비무슬림의 기록은 있는가? 오히려 동시대 비무슬림들이 저 머나먼 아라비아에 있는 작은 마을에 대해서는 몰라도 인근에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기독교도들이 메카를 들어보지는 못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페트라와 아랍 정복자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언급은 왜 찾아볼 수 없는가? 622년 '히즈라(그런데 어디에서 어디로 이주한 것인가 도대체?)' 이후 632년 죽기까지 멀지 않은 곳에서 스스로를 신의 예언자라고 자처하는 이가 활동하는데 동시대 기독교도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기에 그가 죽고 아랍인들이 정복을 시작한 이후에야 무함마드를 언급하기 시작한단 말인가? 이슬람의 기원을 페트라로 옮겨온 깁슨의 가설을 동시대 비무슬림의 기록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혼란과 의문만이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동시대 비무슬림들이 페트라가 무슬림의 근거지라는 점은 알았습니까?

『신성한 도시』에서

 

메카가 무역 중심지가 아니었다는 크론의 주장을 인용하는 깁슨은 그러나 크론의 요지를 교묘하게 비튼다. 크론의 주장 은 메카 쿠라이시 부족이 막대한 부를 쌓을 정도로 대규모 국제 교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아예 교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외부인들이 이슬람 이전, 심지어 이후에도 메카를 언급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은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는 되기에 부족하다.

 

그러니까 무슬림들이 문화대혁명을 했다 이 말이죠?

『신성한 도시』에서

 

깁슨은 무슬림들이 페트라에 대한 기록과 비문을 모조리 파괴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기억을 완전히 말소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7-8세기 무슬림들은 결코 서로 화합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우마이야 가문의 지지자들, 알리 추종세력, 카와리즈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으로 분열된 때가 바로 7-8세기 무슬림 공동체였다. 만약 이들 중 한 집단이 대규모 기억조작에 나서 페트라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이슬람의 기원을 메카로 옮기려고 했을 때,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대립하던 다른 집단들도 갑자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는 말인가? 이베리아반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흩어져 있던 무슬림들이 동시에 페트라의 기원에 관한 기억을 망각하는, 또는 망각시키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100년이 넘게, 수많은 모스크가 페트라를 향한 채 지어질 정도로 널리 퍼져 있던 기억이 무슬림 기록뿐만 아니라 동시대 비무슬림 기록에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무엇보다도 오늘날 무슬림에게야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7-8세기 무슬림들에게 무함마드가 태어난 땅이 페트라여서는 안 될 이유가, 굳이 메카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메카가 초기 무슬림들에게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슨 수를 써서 어떻게 사람들이 메카를 성지라고 믿게 만들 수 있었는가? 어제까지 페트라를 향해 예배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메카를 향해 예배하게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깁슨은 이에 대해 아무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거 증거 아니에요

『신성한 도시』에서

 

더 나아가 무려 무슬림들이 모든 기록을 파괴했기에 이슬람이 페트라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 잊혔다고 주장하며 깁슨은 이집트를 정복한 아랍 군대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파괴한 사례를 든다. 깁슨은 마치 640년(사실은 642년이다) 이집트를 정복한 무슬림 장군 아므르 이븐 알아스가 칼리프에게 보낸 편지 '원본'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이 내용은 10세기 무슬림 역사가 이븐 압둘 하킴(Ibn Abd al-Hakim, 870년 사망)이 전하는 내용이며, 예전 글에서 다루었듯이 실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후대에 창작된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깁슨은 어떠한 사료 비판도 없이 마치 아랍인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모조리 파괴하면서 페트라와 관련된 그들의 과거를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처럼 주장한다. 일단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이슬람의 페트라 기원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이슬람이 페트라에서 등장했다고 증언하는 기록이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반대로 무함마드라는 상인이 메카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깁슨의 주장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7세기 기술력으로 이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신성한 도시』에서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김일성도 이렇게는 못했겠다

무슨 『1984』냐

 

『신성한 도시』에서

 

이처럼 깁슨은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쉽게 조작되고 지워버리고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오늘날 이슬람 초기 역사에 관한 수정주의 학파는 역설적으로 무슬림 역사가들이 전통적 서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과거의 기억과 전승을 최대한 보존해왔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다. 무함마드의 생애에 관해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내용을 기록했기에, 코란의 형성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점을 남겼기에, 기록되지 않은 코란 구절이 존재했다는 점을 기록하고 코란을 읽는 서로 다른 7개의 독법을 보존했기에 수정주의 학자들은 이슬람의 기원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깁슨의 말대로 정말 모든 기억을 말소하고 기록을 파괴해 하나의 일관된 서사를 만들어냈다면 수정주의 경향의 학자들이 대체 어떻게 무슬림 전통 서사에서 수많은 모순과 수수께끼를 발견해낼 수 있었는가? 깁슨 스스로도 예언자의 생애에 관한 전승에서 메카가 사실은 페트라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본인은 생각)하는 자료를 찾아낸다.

 

다 파괴했다면서?

 

무슬림들을 미치광이 광신자 홍위병으로 만들어놓고 무슨 하나의 작은 변화에요.....

『신성한 도시』에서

 

결론적으로, 깁슨이 제시한 초기 모스크의 키블라 문제는 매우 흥미로우며 앞으로도 더 많은 진지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이슬람의 기원에 관한 서사는 허술하다못해 없다시피하며, 지나치게 무리한 가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깁슨은 키블라의 변화가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배 방향의 변화에 뒤따르는 수많은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키블라 문제를 제외한 깁슨의 나머지 주장은 모든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대개 수정주의 접근법의 연구를 이슬람이 등장한 이후 무슬림들이 다양한 도전 속에서 겪어온 모험을, 한 인간 공동체가 끝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온 역동적인 모습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생각한다. 그러나 깁슨의 주장에 대해서만큼은, 이번만은 나는 무슬림들의 편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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