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란의 한 팔이 꺾이다
지난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노린 미군의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부대인 예루살렘 군의 사령관이 사망했다. 이란 국외의 군사, 첩보 및 게릴라 작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인 예루살렘 군은 중동 각지의 쉬아파 민병대와 무장조직, 친이란 정치세력을 지원하며 중동 내 이란의 대외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이번에 사망한 인물은 지난 20년간 예루살렘 군의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이란 정권과 최고지도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온 거물급 인사다. 특히 2003년 이라크의 정권 교체와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이란이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펼칠 수 있는 지역 정세가 조성됨에 따라 예루살렘 군의 활동 범위 역시 대폭 확대되었고 예루살렘 군 사령관의 행보 역시 언론과 학계 그리고 중동 및 서방 국가 정부의 관심을 받는 중요한 몸이 되었다. 그런 거물급 인사가 2020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다름아닌 이란의 최대 적국인 미국의 손에 살해당했고, 중동 정세는 다시 한치 앞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긴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란 혁명수비대 예루살렘 군 전(前) 사령관>
그런데 그는 대체 누구인가?
사실 이는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다. 지난 며칠 내내 국내 언론과 외신이 지칠 줄 모르고 그에 대한 소식과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정체와 신분을 철저히 가린 채 중동 오지에 숨어 활동하던 인물은 아니었으며 외신과 중동 및 서방 국가의 정보부와 중동 및 안보 전문가들은 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그의 신분이나 행적이 아닌 바로 그의 이름이다.
사령관의 죽음 이후 이란 콤(또는 곰)의 잠카란(또는 잠카런) 모스크에 내걸린 "붉은 깃발"
몇몇 외신에 따르면 이 깃발은 "복수"를 상징하는 의미라고는 하는데
이 붉은 깃발의 의미에 대한 분석을 다룬 공신력 있는 매체나 연구자의 주장은 아직까지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아랍어로 "오, 후세인의 투사들이여!" 쓰인 깃발을 내건 걸 보니
확실히 평화나 항복을 의미하는 뜻은 아닌 듯 하다.
출처: https://theislamicinformation.com/iran-red-flag-jamkaran-mosque-us-war/
2. "너의 이름은?"
먼저 영어권 자료를 살펴보자. 위키피디아, BBC, 월스트리트 저널, CNN 그리고 중동 전문 영어 매체인 더 뉴 아랍(The New Arab), 알모니터(Al-Monitor)에서는 그의 이름을 Qasem Soleimani라고 쓰고 있다. 한편 뉴욕 타임즈와 가디언에서는 Qassim Suleimani, 텔레그레프에서는 Qassim Soleimani, CBS와 블룸버그, 유로 뉴스, 로이터, AP통신 그리고 역시 중동 전문 영어 매체인 알자지라와 미들이스트모니터(Middle East Monitor)에서는 Qassem Soleimani라고 부른다. 이처럼 주요 국제 외신마다 이 인물의 이름을 조금씩 서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어떻게 그를 부를까? 이란 정부가 운영하는 영어 매체에서도 혼란은 여전하다. 이란의 다언어 방송인 Press TV에서는 Qassem Soleimani라고 표기하는 반면 이란 공식 통신사인 IRNA에서는 Qasem Soleimani라고 쓰고 있다. 한 사람이 이름이 여러 개란 말인가? 역시 혁명수비대의 고위 사령관, 대외적으로는 그리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하기에 여러 이름을 쓰는 것일까?
그렇다면 국내 언론에서는 이 사람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연합뉴스, 중앙일보, MBC에서는 '거셈 솔레이마니'라고 부르는 반면 KBS, 조선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에서는 '가셈 솔레이마니'라고 쓰고 있으며, KBS와 동아일보에서는 두 표기법 모두가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한겨레와 서울경제에 따르면 이 자의 이름은 '카셈 솔레이마니'이다. 여기에 '콰셈 술레이마니'라고 부르는 문화일보와 '카심 술레이마니'라고 쓰는 MBN까지 더해지면 대체 이 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더 이상 그만 알아보고 싶을 지경이다. 이처럼 국내 언론에서도 이 자의 이름 표기는 각기각색이다.
물론 이 인물의 이름은 하나다. 사실 라틴 문자가 아닌 아랍 문자를 쓰는 아랍인 및 이란인의 라틴 알파벳 표기가 매체마다 중구난방인 상황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영어 매체에서 나타나는 혼란은 영어 매체를 주로 참고하는 국내 언론에서도 그대로, 아니 더 혼란스러운 형태로 나타난다. 당장 우리는 지난 2018년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실종된 언론인의 이름을 두고 "대체 이 사람 이름은 어떻게 읽는거야?"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가? 이 인물의 이름 표기법을 둘러싼 혼란 역시 마찬가지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인명의 라틴 알파벳 또는 한글 표기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جمال خاشقجي>
자말....카쇽지? 카쇼크지? 카슈끄지? 카슉지?
개인적으로는 자말 카슉지 쪽이 원어에 그나마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3. 표기의 혼란
아랍어 인명의 라틴 알파벳 전사나 한글 표기 모두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 , 사실 개인적으로는 페르시아어 인명 표기법이야말로 가장 헷갈리고 혼란스럽다. 비록 아랍어와 같은 아랍 문자를 쓰지만 이란에서 쓰이는 페르시아어는 엄연히 아랍어와 다른 언어다. 사실은 어족부터 다르다. 아랍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셈어파에 속하며 페르시아어는 인도유럽어족 인도이란어파 이란어군에 속하는 언어로 두 언어는 어족부터가 다르다. 이슬람화와 아랍어권과의 오랜 접촉의 역사로 인해 많은 아랍어 단어와 표현이 페르시아어에 유입되었지만 사실 페르시아어 문법은 아랍어보다 머나먼 친척 언어인 영어와 비슷한 점도 많다. 아랍어와 달리 현대 페르시아어에는 성과 수의 구분, 정관사, 명사의 격변화와 쌍수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반면 영어와 비슷하게 be동사가 존재한다.
번외지만 한가지 짚고 가고 싶은 점은 '이란어'라는 표현이다. 이란의 공용어이자 공식언어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를 가리켜 흔히 '이란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란어(Iranian language)는 페르시아어를 포함한 이란계 언어들을 총체적으로 말하는 단어다. 페르시아어를 '이란어'라고 묶어버리면 '이란'에서 역시 널리 쓰이는 다른 언어들이 모두 가려져 버린다. 세계 많은 나라들처럼 이란 역시 다언어 국가로 북동부 지역에서는 아제리어가, 남부 걸프해 연안 지역에서는 아랍어가, 이란 서부 이라크 접경지역에서는 쿠르드어가 쓰이며 이 외에도 로르어, 마젠다란어 등 이란계 언어와 투르크멘어, 발루치어 등 다양한 언어가 쓰이고 있다. 페르시아어는 이란에서 쓰이는 다양한 언어들 중 가장 지위가 높고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이며 공식언어일 뿐이다. 이런 문제의식의 결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한국외대 '이란어과' 역시 작년에 학과 명칭을 '페르시아어과'로 바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앞서 말했듯이 페르시아어는 아랍 문자를 쓰지만, 발음은 아랍어와 완전히 같지 않다. 아랍어에 존재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자음들은 대개 간소화되어 서로 같은 발음으로 통합되었기에 아랍어에서는 서로 다른 소리를 가진 여러 글자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다. 또한 단모음이 세 개([a], [i], [u])밖에 없는 아랍어보다 모음이 더 많은 페르시아어를 표기하기 위해 일부 글자는 아랍어와 다른 모음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랍어에서는 장모음 [aː] 또는 성문 파열음[ʔ]인 함자(hamzah, ء)의 받침을 표기하기 위해 쓰이는 알리프(alif, ا)이다. 페르시아어에서 알리프는 후설 원순 저모음인 [ɒː] 발음, 즉 ㅓ와 가까운 - 그러나 아예 같지는 않은 - 소리를 가진다. 한편 한편 아랍어에서는 [i] 모음을 나타내는 모음부호 카스라(kasrah)는 페르시아어에서는 [e] 모음을, 아랍어에서 [u] 모음을 나타내는 담마(ḍammah)는 페르시아어에서 [o] 모음을 가리킨다.
그러면 이 자의 페르시아어 이름을 살펴 보자. 빨간색으로 표시된 글자가 바로 아랍어에서는 장모음 [a] 이지만 페르시아아어에서는 [ɒ], 즉 ㅓ와 비슷한 소리를 가지는 알리프이다.
아랍어와 달리 페르시아어는 모음부호를 거의 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편의를 위해 굳이 아랍어식 모음부호를 추가해보았다. 글자 아래에 있는 짧은 선이 바로 아랍어에서 [i], 페르시아어에서 [e] 모음을 나타내는 카스라, 그리고 글자 위의 숫자 9 모양의 부호가 바로 아랍어에서는 [u] , 페르시아어에서는 [o] 모음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담마(ḍammah)다. 위키피디아에 따라 인물의 이름을 IPA로 옮겨본다면 [ɢɒːˌsem(e) solejmɒːˈni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페르시아어 발음에 우리말로 가깝게 옮긴다면 "거셈 솔라이머니" 정도로 옮겨볼 수 있겠다. 일부 외신에서는 아랍어 카스라를 우선시하여 페르시아어에서도 카스라로 표기된 단어를 그냥 [i]로 옮겨 Qasim/Qassim 이라고 쓴 듯 하나, 아랍어에서 카스라가 [i]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페르시아어에서는 엄연히 [e] 소리로 실현되니 굳이 가심/카심이라는 표현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Suleimani라고 쓴 표기 역시 아랍어의 담마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표기로,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인의 인명을 굳이 아랍어를 따라 표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s를 두 개 쓴 표현의 경우, 왜 대체 뜬금없이 s가 하나 더 들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해당 인물 이름의 페르시아어 표기에서는 [s] 음가를 가진 자음은 딱 하나만 있을 뿐이다.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는 혁명수비대 산하 "예루살렘 군"이다. 페르시아어로는 سپاه قدس, 라틴 알파벳으로는 Sepāh-e Qods로 옮길 수 있는 이 단어는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쿠드스/꾸드스 군으로 쓰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예루살렘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단어 قدس (Qods)다. 이 단어는 본래 아랍어 단어인 القدس (al-Quds)에 어원 - 페르시아어에는 정관사가 없기에 아랍어의 정관사 ال (al)은 탈락되었다 - 을 두고 있는데, 보시다시피 아랍어 [u] 모음이 페르시아어로 오면서 [o]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아랍어 어원을 살려 쿠드스/꾸드스로 쓰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페르시아어 본래 소리를 따라 코드스/꼬드스, 또는 거셈 솔레이머니에 적용된 규칙을 그대로 따라 고드스로 옮기는 편이 나을까? 이스라엘의 지배로부터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해방한다는 명분 하에 적극적인 반미 행보와 중동 내 친미 동맹국가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정당화하고 예루살렘과 관련된 다양한 상징을 동원하는 이란의 정치적 전략을 고려해본다면 또 본래 아랍어 소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도 나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 더, 페르시아어에는 명사와 명사, 명사와 형용사를 연결할 때 에저페(ezāfeh)라고 하는 [e] 모음이 두 단어 사이에 추가된다. Sepāh-e Qods에서 보이는 "-e" 부분이 바로 에저페다. 이 발음도 살려서 "세퍼헤 고드스"라고 옮겨야 할까? 에저페 발음도 그대로 옮기기로 한다면 에저페는 이름과 성을 연결할 때도 쓰이기 때문에 하산 로우하니는 "하사네 로우허니"로, 거셈 솔레이머니는 "거세메 솔레이머니"가 되야할 것이다. 물론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영어권 매체에서는 인명의 에저페는 거의 전사하지 않는다.
문제의 인물의 이름에는 이 글자가 두 번 쓰이며 바로 여기서 왜 국내 언론이 '거셈'과 '가셈'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지 원인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학술서나 논문에서 페르시아어를 IPA가 아닌 라틴 알파벳으로 전사할 때 알리프는 주로 ā 또는 간혹 â로 옮기곤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언론에서는 각종 부호를 생략, 알리프와 파타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a로 쓴다.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외신은 예루살렘 군의 사령관의 이름을 Qāsem Soleimāni로 쓰지 않고 간단하게 Qasem Soleimani로 표기했다. 따라서 페르시아어를 알 턱이 없는 국내 기자들이 이를 보고 '카셈/가셈 솔레이마니'로 쓰는 것은 따라서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한편 거셈으로 옮긴 경우는 페르시아어 알리프가 단순한 [a]가 아니라는 경우를 어떤 방식으로든 알았으며 이를 인지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면 모든 알리프를 다 ㅓ로 써야하는거 아닐까. 그러나 거의 모든 국내 언론에서는 '솔레이머니'가 아닌 '솔레이마니'로 쓰고 있다. 왜 어떤 알리프는 원래 소리에 가깝게 쓰는 반면 다른 알리프는 다른 방식으로 옮기는 걸까?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자음이다. 이 이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자음은 바로 이름의 첫 글자, 까프(qāf, ق)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페르시아어의 까프는 유성 구개수 파열음으로 무성 구개수 파열음인 아랍어의 까프와는 살짝 다르다고 한다. 실제 들으면 조금 다르기는 하다. 비록 이 두 자음 모두 한국어의 [ㄲ] 과는 많이 다르지만 많은 경우 아랍어 까프는 라틴 알파벳으로는 Q, 한글로는 ㄲ으로 옮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 또는 꾸르안이다. 아랍어로는 "القرآن"으로 쓰고 [alqur'ʔaːn]이라고 발음하지만 라틴 알파벳으로는 대개 Qurʼān, 한글로는 꾸르안 또는 꾸란으로 옮긴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국어 표기법에서는 외국어의 한글 표기시 된소리 사용을 지양하라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ㄲ보다는 ㅋ를 쓰는 편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하게 자리잡은 표기를 어차피 딱히 원어와도 크게 비슷하지 않은 표기(어차피 ㅋ나 ㄲ나 아랍어 까프와는 판이한 발음이다)로 바꿔야 하나 싶은 생각이기에 나는 지금까지 대개 코란으로 써왔다.
페르시아어 까프는 조금 다르다. 까프와 유성 연구개 마찰음[ɣ]인 가인(ghayn, غ)이 구분되는 아랍어와 달리 페르시아어에서는 까프와 가인의 소리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아랍어와 페르시아의 까프 모두 - 거의 모두 قاسم 을 Qassem/Qasem 으로 옮기는 외신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 Q로 전사하지만, 사실 아랍어의 까프와 페르시아어의 까프 소리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듣기에 페르시아어의 까프는 한국어의 ㄱ - 물론 절대 ㄱ 소리는 아니다 - 와 비슷하게 들린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많은 한국 언론에서 Qasem이라는 표기를 가셈/거셈으로 옮긴게 아닐까 한다. 반면 일부 언론에서 나타나는 카셈/콰심/카심이라는 표기는 라틴 알파벳의 Q를 그대로 옮긴 결과로 보인다. 물론 ㅋ 또는 ㄲ으로 옮긴 방식 역시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ㄱ이나 ㄲ이나 ㅋ이나 페르시아어의 까프와는 다른 소리니까.
페르시아어학이나 언어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따라서 이 이름을 그냥 내가 듣기에 가장 원어에 비슷하게 들리도록 한글로 옮겨본다면 "거셈 솔레이머니"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표기가 반드시 맞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거셈 솔레이머니로 쓰는 것이 맞을까? 그런데 문제는, 페르시아어 알리프를 다 ㅓ로 옮기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인명과 지명 모두를 싹 다 바꾸어야 한다는 데 있다. 당장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역시 خامنهای, [xɒːmeneˈʔiː], 즉 알리프가 들어간 이름이며 거셈 솔레이머니에 적용된 원칙을 따르면 "허메네이"로 옮겨야 할 것이다. 이란 현 대통령인 로우하니(روحانی, [ɾowhɒːˈniː])의 이름에도 역시 알리프가 들어가며 그렇다면 "로우허니"가 된다. 테헤란, 이스파한, 쉬라즈, 아니 이란이라는 국명과 지명 모두 알리프가 들어가며 그렇다면 테흐런, 에스파헌, 쉬러즈, 이런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게도 이 인명과 지명들을 이렇게 옮기려면 어색하게 보인다. "대중에게 익숙한 쪽"을 좇는다고 하지만, 그 "익숙한 쪽"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거셈 솔레이머니와 하메네이 사이 대중적 친숙함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덩달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خ[χ] 는 어떻게 옮겨야 할까? 라틴 알파벳으로 이 글자는 거의 kh로 전사되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한글 전사에서 발생한다. 하메네이 또는 호메이니(خمینی, [xomejˈniː])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 글자는 ㅎ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아랍어 단어 칼리파(خليفة, [xaliːfa])에서처럼 ㅋ으로 옮기기도 한다. 어차피 이 글자의 소리는 ㅋ도 ㅎ도 아니다. 어디를 따라가야 할까?
결국에 한국어 표기를 위해 만들어진 한글로 이역만리 타향 지구 반대편의 다른 언어를 완벽하게 옮길 수는 없다. 설령 원어 발음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을지언정 결국에는 글을 쓰는 이, 언론사, 또는 국립국어원 등에서 하나의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표기하는 방안이 그나마 나은 대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랍어도 아직 하나의 분명한 표기 기준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어도 그 기준을 직접 본 적도 없는 마당에 국내에 문법과 음운 체계를 심도 있게 전공한 사람을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지경인 페르시아어 표기 체계를 기대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름의 원칙을 세우려고 해도 이미 입과 손에 굳은 습관과 익숙함은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당장 나라도 "이런의 최고지도자 허메네이"라는 표현은 정말 이상하게 짝이 없어 보이고 그렇게 쓰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덧붙이자면 나는 언어학과 음운, 음성의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닌, 그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조금 아는 사람일 뿐이며 따라서 국내 언론이 비영어권에 무관심하다느니 표기가 엉망진창이라니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물론 국내 언론에서 쓰이는 표기 중 이거는 정말 확실히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표기도 있다 -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의 h에 해당하는 음가를 그냥 묵음처리하고 쓰는데, 많은 경우 그 h는 실제 소리가 있으며 사라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솔레이머니/솔레이마니의 장례식이 치러진 이란 남부 지역을 많은 국내 언론은 "아바즈"라고 쓰고 있지만, 이 지역명인اهواز (Ahvaz)에서 h는 묵음이 아니며 따라서 아흐바즈, 페르시아어 알리프 발음을 살린다면 아흐버즈가 더 나아보인다.
당장 외신들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라틴 알파벳 표기가 혼란스러운 마당에, 국립국어원 역시 분명한 기준을 아직까지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 국내 언론사가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를 모두 파악하고 그에 따라 원어에 가깝게 옮겨야 할 의무도 없고 그럴 여력도 역시 없다. 이 글은 다만 최근 중동 정세에 관련된 기사를 보시고 "왜 이렇게 이름이 제각각이지?"라는 의문이 드신 분들을 위해, 분명하고 명쾌한 답을 드리기보다는 "그냥 그게 그래요"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여러분이 혼란스러워 하고 의아해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썼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훨씬 익숙하고 널리 쓰이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역시 항상 하나의 분명한 원칙에 따라 일관적으로 표기되지 않기도 한다. 아랍인과 이란인의 이름을 국내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일관성은 외국어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고 독자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 하나의 원칙을 세워 일관되게 표기하는 노력 방기해서는 안되겠지만, 동시에 표기 과정에서는 항상 비일관성이 따라올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수용해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실제 페르시아어 화자들이 무어라 말하는지 영상 링크를 첨부해보았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들리시는가?
1월 3일 에스머일 거니/에스머일 거어니가 예루살렘 군의 후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뉴스 영상
영상 3초와 27초에 거셈 솔레이머니의 이름이, 영상 10초에 그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에스머일 거니/에스머일 거어니(إسماعيل قاآني, Esmāil Qāni)의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알리프와 까프가 들어간 이 이름 역시 어떻게 옮겨야 할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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